닐 드럭만은 유저들의 권력을 어떻게 앗아갔는가? <라스트 오브 어스 Part2> [01]

2021. 1. 2. 00:39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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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닐 드럭만은 유저들의 권력을 어떻게 앗아갔는가?> [01]
<닐 드럭만이 유저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방법>        [02] 

  어떤 작품이든,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은 독자를 만나 비로소 완성되며 독자의 지적 배경이나 해석 방식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작품을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이 같은 상호작용을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는 책 <저자의 죽음>(1967)에서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했다. 독자는 작가의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는 작가와 같이 창작하는 자이다. 그래서 창작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며 작가가 허용하는 공백이 클 수록 해석의 다양성은 늘어난다. 실제로 작가는 때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침묵과 같은 공백을 통해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독자들은 그 추상적인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구체화하여 꺼내 놓는다. 이 창작의 즐거움은 커뮤니티를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저들은 작품이 남긴 조그마한 공백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해석자(소비자)에 의해 매워진 공백은 일종의 컨센서스로 유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창작 방식과 매체의 다변화로 전례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히 영화나 게임 매체는 협업이 발달하였다. 단일 감독으로 시리즈 물을 모두 작업하는 것은 드문 일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회차가 길어지면서 해석자가 쌓아놓은 감정이나 설정들을 부수는 일이 생기는 한편 감독이 작품 안팎에서 해석자(=소비자)와 대결하는 일이 일어났다. 롤랑 바르트가 남긴 말이 무색하게 더 이상 감독(저자)는 죽음으로 침묵하지 않는다. 저자는 죽음에 이르지 않고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소비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를 대표하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두 작품이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와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Part2>(2020)이다. 

Rian Craig Johnson(좌), Neil Druckmann(우)

  두 작품 감독의 공통점은 (1) 매우 성공한 작품의 후속작(sequel)을 맡았다는 점 (2) 감독이 전작의 핵심 팬층과 SNS에서 대결을 벌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두 작품 모두 팬층은 양분되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신규 팬에게 호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핵심 팬까지 이탈하면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끝으로 후속작 흥행에 번번이 실패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라이언 존슨은 Swings & Mrs에서의 2019년 12월 인터뷰(Link, 23분 경)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 다르기 때문에 일종의 컨센서스(합의)를 따라가게 되면 나쁜 영화가 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라스트 제다이>에서의 워프 돌격, 이 한장면으로 6부작을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비슷한 취지었지만 <라오어 Part2>의 감독 닐 드럭만은 발매 전의 인터뷰에서 라이언 존슨보다 노골적으로 그 의도를 드러냈다. 이 인터뷰에서 감독은 Part 2에서의 주요 목표를 전작에서 소비자들이 만들어 놓은 해석을 해체하는 것으로 잡고 있다.

  라오어1은 조엘의 거짓말에 대한 엘리의 답변으로 끝나는 결말에 커다란 공백을 남겨놓았다. 조엘은 거짓말을 했고 본질적으로는 엘리 본인의 문제도 해결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엘리의 "알았어요." 한마디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묻어두는 역할을 한다.

  그 엔딩으로 분출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들은 플레이어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 이 공백이 주는 여운 속에서 해석자들은 권력과 자유를 느끼는데 이미 주어진 이야기를 전제로 해석자들은 조엘의 마음과 엘리의 심정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창작할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원하는 해석을 창작물로 내며 대체로 다음의 내용을 논의 했다. "엘리는 조엘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어.", "엘리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어.", 그리고 대체적으로는 "엘리는 조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버려 둔 거야.""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저자는 2편에서 무덤에서 일어나 말한다. "아니야."  

“The first game is so sacred. The ending is so sacred,”... But in the end he felt that diverging from Joel and Ellie’s story was the “coward’s way out. To me, at that point, you might as well just do a new IP,” he continues, “versus saying: no, we’re gonna double down and we’re gonna expose what this ending means. To take some of the things that people hold sacred and just... dismantle it.”
“첫 번째 게임은 정말 신성시됩니다. 결말은 정말 신성시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Joel과 Ellie의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신규IP 개발)이 겁쟁이나 할만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우리는 오히려 강경하게 진행할 것이고 이 결말(1편의 결말)이 의미하는 바를 폭로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것들 중 일부를 취하고 해체하기 위해서요.”
-GQ interview-

  라오어 1 결말의 공백을 매우면서 해석자가 누렸던 창작과 그 권한의 즐거움은 이제 Part2에서 닐 드럭만에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부정당한다. 게임에서는 조엘이 인류 대신 엘리의 생명을 선택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여러 차례 암시하고 있다. 대의를 위해 가족을 버리고 파이어플라이에 합류한 유진의 이야기는 조엘의 선택과 대비된다. 파이어 플라이가 해체된 것을 절망하여 자살한 채 발견된 시체를 발견한 것으로 조엘의 선택이 대의를 위한 조직, 파이어플라이를 파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의 행복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잭슨을 떠났다가 시체로 발견된 커플을 통해 조엘과 엘리의 평화로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직접적으로 조엘은 전작에서 엘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살인에 대한 복수로 고문을 당한 뒤 목숨을 잃게 된다. 엘리는 조엘을 잃고 친구와 연인도 잃고 손가락도 잃었으며 조엘에 대한 복수도 실패한다. 전작의 결말에 대해 해석자들이 행한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닐 드럭만은 똑똑히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닐 드럭만이 전작을 완전히 부정하는 형태로 다시 말해 소비자의 작품 해석의 방식을 완전히 부정하였음에도 일부 유저들은 전작과 동일한 형태로 Part2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Part2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공백이 전작보다 많은 편이다. 전작은 플레이 타임 내내 철저히 엘리와 조엘의 관계중심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그 과정에서 단단하게 형성된 감정과 유대의 바탕 하에서 플레이어 즉 해석자는 결말을 해석하였다. 그래서 결말에 대한 이견도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생겼고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았다. 그러나 Part2는 너무 많은 것을 다루고 있다. 증오와 공감, 정의의 상대성, 엘리와 디나, 조엘과의 관계 그리고 아비와 레브의 관계 등등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을 해석자에게 충분히 쌓아 나가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결과 레브, 야라를 구하는 행동 동기는 꿈꾸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엘리가 복수를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된 동기는 조엘이 등장하는 플래시백(flashback)으로 대체되었으며, 마지막은 기타를 두고 가는 것으로 작품 곳곳에 공백을 남겨 두었다.

  이번 작품의 공백들은 닐 드럭만이 부정한 전작 엔딩의 그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작동한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공백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어떤 해석자는 이 공백을 개연성 부족으로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공백 속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어떤 증거들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Part2의 결말을 보고 누군가는 모든 걸 잃어버린 엘리가 자살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고 어떤 사람들은 복수의 연쇄를 끊고 자신의 삶을 살러간다는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모두 1편에서 일어났던 것 그대로다. Part2는 그 자체로 해석자들의 행위를 무의미 속으로 떨어뜨린다. 도입부에서 말한 것처럼 작품은 결코 작가가 완성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은 그들의 해석을 존중하는 형태로 sequel을 만들었다. 그러나 닐 드럭만에게 독자는 더 이상 이야기의 참여자가 될 수 없다. 그는 대중의 놀이로서의 해석을 인정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허락하는 선에서 허용할 뿐이다. 

  Whatever we say here ultimately doesn’t matter. Everything you need to understand the story is in the game, and whatever players take from it… their interpretation is right. At least until if we ever make another game and then we can argue about it then.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말하든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게임 안에 있고, 플레이어들이 그 이야기에서 무엇을 취하든 간에 그들의 해석이 옳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다른 게임을 만들 때까지는요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논의할 수 있습니다.
-Indiewire interview-

닐 드럭만의 작품 속에서 그의 힘은 절대적이다.

  여기 까지만 했다면 <라스트 오브 어스 Part2>는 그리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닐 드럭만은 전작의 애매모호한 결말을 즐겼던 해석자들을 부정한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일반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방식까지 해체해 버린다. 플레이어들은 Part2 세계관을 여행하면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현실에서도 느끼기 힘든 트라우마의 경험을 대리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플레이를 강제당한다. 요컨대 닐 드럭만은 우리가 게임에서 불쾌한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We can make you experience this thirst for revenge. This thirst for retribution and having. you actually, like, commit the acts of finding it and then showing you the other side to make you regret it. To make you feel dirty for everything you’ve done in the game, making you realise ‘I’m actually the villain of the story.”
우리는 플레이어가 복수에 대한 갈증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실제로 이를 추구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나서는 여러분이 후회하도록 만들기 위해 다른 측면을 보여줄 겁니다. 당신이 게임에서 했던 모든 일에 대해 더럽게(불쾌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나(플레이어)'는 실제로 이야기의 악당'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 것입니다.”
-GQ interview-


참고자료
Sam White, "The Last of Us Part II: how Naughty Dog made a classic amidst catastrophe." GQ. June 9, 2020.
David Ehrlich, "Neil Druckmann and Halley Gross Open Up About the Biggest Twists of ‘The Last of Us Part II’." IndieWire. Jun 22, 2020.
DARRYN KING, "The Last of Us Part II and Its Crisis-Strewn Path to Release." WIRED. Jun 10, 2020
목차
<닐 드럭만은 유저들의 권력을 어떻게 앗아갔는가?> [01]
<닐 드럭만이 유저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방법>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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