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학, 쉽게 읽기 - 제1논문, '선과 악', '좋음과 나쁨' [02]

2020. 11. 13. 02:25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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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심리학자의 가설 - '좋음'의 기원

  니체는 제1논문 첫머리에 도덕관념의 기원을 연구한 영국 심리학자를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니체는 그들이 '좋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고 말합니다. 

  "원래 비이기적인 행위란 그 행위가 베풀어져 이익을 얻은 사람들 측에 의해 칭송되고 좋다고 일컬어졌다. 나중에는 이러한 칭송의 근원이 잊혔고 그러면서 비이기적 행위들은 습관적으로 항상 좋다고 칭송되었기에 그냥 좋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마치 그 행위 자체가 좋은 것이기라도 하듯이."
(2020, p.29)

  니체는 위와 같은 영국 심리학자들의 분석을 '공리' -> '망각' -> '습관'으로 요약합니다. 이들은 좋음의 기원을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 즉 공리를 그 출발로 본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더 이상 초월적 근거로 도덕관념을 설명하려는 단계는 넘어선 상태였죠. 그러나 니체는 두 가지 부분에서 위와 같은 선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01 가설에 역사적인 근거가 박약함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음이라는 판단은 '호의'를 받은 사람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 자신... 의에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좋음의 기원은 이익을 얻은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자의 가치부여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좋음이라는 단어가 비이기적인 행위와 반드시 연관이 있다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02 가설에 심리학적 모순이 존재함

  영국 심리학자들은 이익을 본 사람들이 그 근원을 잊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이상한 일입니다. 이익을 본 사람이 어떻게 그 근원을 망각한다는 말입니까? 잊혀지는 대신 더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일 것입니다. 

도덕관념의 기원 - '좋음'과 '나쁨' 그리고 '선'과 '악'

  니체는 위와 같은 이유로 기존 가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좋음'에 대한 어원학적 접근을 시도 합니다. 그는 '좋음'이 어느 언어에서든 기본적으로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 신분을 나타내는 말인 '고귀한', '귀족적인'의 기본개념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주장합니다. 그는 '좋음'과 반대되는 개념인 '나쁨' 역시 신분을 나타내는 '비열한', '천민적인', '저급한'에서 발전해 온 것을 발견했죠. 이와 같은 근거로 니체는 '좋음'이라는 개념은 강자인 사람이 스스로를 긍정함에서 비롯되었고, 그(자신)와 대비되는 약자인 사람들을 가리켜 '나쁨'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좋음'과 '나쁨'은 그의 언어로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니체는 이러한 도덕을 '고상한(주인) 도덕'으로 명명합니다.

  반면에 강자가 곤란했던 사람들 즉 사제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고상한 도덕'이 부여한 가치 규정 방식을 뒤틀어 강자의 도덕에 맞섭니다. 강자와는 달리 이들은 자신에게서 '좋음'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들에게서 악을 발견하고 그 악에 대응하는 자기 자신인 '선한 인간'을 규정합니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정신승리를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강자에 보복하지 못하는 것을 '선함'이나 때로는 '용서'로, 복종하는 것은 '순종'으로, 비겁함은 '겸허'로 포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참함에 대한 보상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니체는 이러한 도덕을 '노예 도덕'으로 명명합니다. 

  니체는 2000년의 역사를 고귀한 발생기원을 가진 '좋음'과 '나쁨' 그리고 노예적인 발생 기원을 갖는 '선'과 '악'이라는 가치 간의 대립으로 설명합니다. 니체는 로마인과 유대인을 각각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의 대변자로 보는데 이 싸움에서 대부분 후자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가합니다. 그 결과로 유럽인들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상실 하였고 그 대가로 존재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근거로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해야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이미 무력한 대중에 의한 나치의 출현을 간접적으로 예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니체가 보기에 진정으로 회복해야 하는 것은 주인 도덕입니다. 타인의 비난이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 자. 선 악이라는 가상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이 가치를 구성하는 강자. 그는 이런 유형의 인간을 기대하였습니다.  


참고자료
Friedrich Nietzsche(1887). 도덕의 계보학(홍성광 역). 서울:연암서가(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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