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학, 쉽게 읽기 - 제3논문, 금욕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04]

2020. 11. 28. 02:18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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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 논문에서는 '금욕적 이상' 다른 표현으로는 '사제적 이상' 기원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비록 본문에서 니체는 '금욕적 이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1, 2 논문을 통해 금욕적 이상이라는 개념이 가진 뉘앙스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선 논문에서 사용하였던 강자와 약자(=병든 자)의 대결구도 그리고 약자가 마침내 승리하는 플롯이 거의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제3 논문 역시 동일한 대결구도 속에서 약자들의 이상인 '금욕적 이상'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명합니다.  

  명상적 인간(=사제적 인간) 부류가 처음 나타났을 때 다른 이들은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고대 인류를 가정한다면 이들이 가진 비전투적 요소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힘들었겠죠. 그래서 사제적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심어주기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잔인함'과 '자기 거세'라는 무서운 방법을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심었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직자에게 요구하는 덕목이기도 한데 세계 부정적, 삶을 적대시, 감각의 불신, 관능을 멀리하는 태도입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마법사로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예언자로 불리며 사회에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사제적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허구적 이야기는 현실을 담백하게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1 논문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은 강자처럼 자신을 긍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자들을 악(惡)으로 생각한 뒤 그 대응물인 자신을 선(善)으로 생각해야 했습니다. 약자로서 패배한(또는 복수를 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죠. 게다가 약자들은 상대편의 악을 먼저 인식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인 선의 근원이 될 신(신성한 신)을 만들어 자기기만을 시도합니다. 이로써 자기기만, 약자들에 의해서 날조된 가치 체계가 '금욕적 이상(=현실 해석체계)'입니다. 이들은 형이상학적 개념(신, 허구)을 토대로 현실을 설명하기 때문에 대비되는 형이하의 삶(변화, 생성, 죽음, 욕망)을 긍정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니체는 약자들의 이상이 '금욕적'이라고 명명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두려움을 심는 데 성공한 명상적 인간약자인 '잘되지 못한 자'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구원자'가 되어 생리적 원인에 의해 약자들이 겪는 고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합니다. 금욕적 사제들의 구체적인 수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생활감정을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의욕이나 소망을 갖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방법을 심리학적으로는 '탈아'의 상태이며 도덕적으로 표현하면 '신성화'라고 함. 깊은 명상의 상태에 이르러 고통을 잊는 방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편함.
  2. 노동의 축복: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법으로 고통받는 자의 관심을 노동이라는 일로 옮겨져 고통을 잊는 방법
  3. 이웃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선행을 하도록 권장하여 그들의 힘에의 의지를 자극받도록 처방, 그러나 이는 약자들에게 아주 하찮은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함.
  4. 무리의 형성: 약자가 자기 스스로에게 갖는 혐오를 넘어서게 하는 새로운 관심거리를 만드는 행위
  5. 양심의 가책(=죄책감): 사제가 사용한 수단 중에 니체가 가장 주목한 방법임. 고통받는 자들이 그 고통의 책임자, 원한의 대상자를 외부에서 찾아 원한을 분출하지 않고 대신에 원한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돌리도록 함. 이를 통해 무리와 사제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축적된 원한의 폭발을 억제함. 

  그러나 위와 같은 수단을 통해 목자(=사제)의 어린양들은 1, 2, 3, 4번의 수단으로 고통에 대해 마취됩니다. 그리고 5번으로 타인에게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스스로에게만 위험한 인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원인을 치료하는 대신 약에 취했고 고통의 이유를 '죄'있는 스스로에게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금욕적 사제가 병을 치료한 곳이면 어디서나 매번 병이 놀라운 속도로 깊고 넓게 확산"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죄'지은자로 거듭난 약자들과 사제들은 강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입니다. 이들은 승리한 자들이나 성공한 자들을 속으로는 몹시 질투, 증오합니다. 그러나 이를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그들의 건강, 성공, 강함 등을 악덕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허구적 기원을 갖는 도덕을 흉내 내면서 우월감을 갖는 것이 이들의 야심입니다. 이들의 최종적인 승리는 강자들이 스스로의 행복을 다음과 같이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너무 많은 불행이 있지 않은가!"

  약자들의 복수심은 집요하기 때문에 그들 주변에 있는 강자들은 반드시 병들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는 강자들을 약자들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살펴보면, 삶의 기본 전제들을 부정하도록 하는 '금욕적 이상'이 어째서 2000년 간 유럽 문화를 지배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양인을 병들게 만들었지 짐작 가능합니다. 약자는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금욕적 이상' 외에는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었죠. 이 무의미에서 구원해 준 것이 사제의 역할 입니다. 인간은 고통 그 자체보다는 삶의 무의미함, 고통의 무의미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 고통에 몸을 맡길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즐기는 존재입니다. 견딜 수 없는 삶의 무의미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준 유일한 이상이 바로 '금욕적 이상'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이상에 따라 현생에서의 삶을 부정하고 차라리 무(無)를 의욕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無)를 의욕하려고 한다.
(2020, p.266)

참고자료
Friedrich Nietzsche(1887). 도덕의 계보학(홍성광 역). 서울:연암서가(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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