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학, 쉽게 읽기 - 제2논문,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 [03]

2020. 11. 18. 05:24Book

반응형


니체는 전장인 제1논문에서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의 기원을 다루었다면 이번 장에서는 양심의 기원에 대해서 다룹니다. 양심이라는 개념을 다루기 위해서 인간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인식되는 인간 군상과는 다르게 '책임'지는 인간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니체는 이 사실을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여 생각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약속할 수 있는 어떤 동물을 기른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관한 본래적인 문제가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망각의 존재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은 기억이라는 능력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 자신을 어느 정도는 '균일'하고 '동등'하도록 만들어 인간이라는 동물을 예측 가능하도록 하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예측 가능한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 인간은 장구한 세월을 거쳐 '풍습의 윤리''사회적인 구속'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이런 방법을 기원으로 생겨난 가책을 느끼는 양심은 과도기적 양심에 불과한 것으로 봅니다. 그는 이 과정의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는 '풍습의 윤리'에서 벗어난 개체, 자율적이고 윤리를 초월한 개체인 약속할 수 있는 '주권적 인간'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주권적 인간'이 자각하는 양심(본능)만이 그의 언어로 '잘 익은 열매'이며 '뒤늦게 익은 열매'입니다.

사회적인 구속으로 형성된 양심(낮은 단계) → 자율적인 '주권적 인간'의 양심(높은 단계)

  니체는 위와 같은 단계로의 양심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와 형태의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 선결 조건이었죠. 그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은 고통을 육체에 새기는 방법을 선호하였습니다. 고대를 묘사한 영화의 형벌을 떠올려 보면 그 방법이 얼마나 끔찍한 수준의 것이었는지 짐작 가능합니다.

  니체는 양심과 더불어 '죄', '의무', '의무의 신성함'과 같은 도덕적 개념 체계가 발생한 최초의 기원을 채권법으로 보았습니다. 어원학적으로 '죄 Schuld'라는 도덕 개념이 '부채 Schulden'과 같은 물질적 개념에서 유래한 것을 예로 들었죠. 또한 어떤 것의 가치를 정하고 교환하는 일은 어떤 저급한 문화권에서도 발견되는 원초적인 행위로 보았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잔인성은 이 채무관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고대의 채권자는 자기가 본 손해를 직접적인 이득으로 변제받는 대신 채무자의 육체나 아내,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학대의 권한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채권자는 우월감과 그로 인간 쾌감을 즐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이 가진 잔인함과 파괴에 대한 욕구와 본능은 '사회와 평화의 속박' 속에서 제한받게 됩니다. 아마 이러한 억압의 가장 오래된 사건은 정복자 종족 혹은 지배자 종족이 상대적으로 약자에게 약탈을 벌인 일 일 것입니다. 강자에 의한 또는 국가에 의한 본능의 억압에 의해 약자들은 자신의 본능을 더 이상 자유롭게 밖으로 분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 본능을 내면으로 갈무리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표출되지 못한 잔인성은 스스로를 공격하면서 충족됩니다. 니체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잔인함 달리 표현하면 '양심의 가책'이 생겨나게 된 배경으로 주장합니다. 

  위와 같은 '자기 학대에의 의지'가 바로 '비이기적인 것'의 가치를 낳는 전제가 됩니다. 제1 논문에서 유약한 유럽인들이 존재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근거로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해야 했던 것처럼 제2 논문에서의 약자도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공격하는 쾌락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신성한 신'과 더불어 '죄책감'과 같은 도덕적 가치들을 도입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채무자인 자신들이 스스로 빚을 갚을 가능성마저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영원한 형벌'을 생각해 냈고 인간인 이유로 가지게 된 원죄의 개념이 생겨났죠.

  이제 다시 양심의 최종 발전 단계인 '주권적 인간'의 양심을 위와 비교해 봅시다. 니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과거의 그리스 인들을 소개합니다. 나약한 자들은 자기 고행을 위해 '신성한 신'을 발명했지만 그리스 인들은 달랐습니다. 신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했죠. 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어리석음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고귀한 자신에게는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음 즉 머릿속 혼란을 신의 장난에 의한 것으로 치부하여 불쾌감을 해소했습니다. 약자의 신성한 신 과는 다르게 그리스인의 신은 벌을 주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대신 떠맡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참고자료
Friedrich Nietzsche(1887). 도덕의 계보학(홍성광 역). 서울:연암서가(202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