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으로 소비하기에는 아까운 사이버펑크 [02]

2020. 12. 24. 15:54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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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으로 소비하기에는 아까운 사이버펑크 [01]

사고실험실 2 :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일반화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정부의 비밀조직인 공안 9과에서 일하는 주인공(쿠사나기 마코토)은 임무의 특수성으로 모든 신체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Cyborg)입니다.

  그녀는 임무로 전뇌 해킹 범죄자인 코드네임 '인형사'를 쫓게 됩니다. 인형사는 전뇌 해킹으로 피해자들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죠. 추격 끝에 피해자는 잡혔고 주인공은 주입된 기억으로 혼란에 빠진 피해자를 지켜봅니다. 그 때 감독은 주인공의 동료 바토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유사체험도 꿈도... 존재하는 정보는 모두 현실이고 동시에 환상이야, 어느 쪽이든 한 인간이 일생동안 접하는 모든 정보는 헛된것이지"

  익숙한 문구입니다. 앞서 살펴본 작품 <매트릭스>는 이와 같은 주제를 다른 재료를 사용해 우리에게 보여주었죠. <매트릭스>에서는 '인간이 인식한 실제'가 메인 테마였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은 실체 인식에 대한 문제는 천착하면서도 그 실체의 일부인 '나'에 대해서는 큰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정보가 일정부분 환상이라면 인간 스스로가 인식하는 '나'에 대해 의문을 갖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일임에도 <매트릭스>는 충분히 나아가지 않습니다. 반면 앞서 나온 작품임에도 <공각기동대>는 <매트릭스>보다 더 깊게 들어갑니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사건의 피해자들을 보고나서 혼란에 빠집니다. 그녀 역시 전자두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신체기관을 기계로 대체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그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기억 외에는 없습니다. 그녀는 바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어쩌면 자신은 아주 옛날 죽었고 지금의 난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짜 인격이 아닐까"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면 인형사는 인간이 아니라 정부조직인 공안 6과의 정보수집 프로그램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의식이란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인형사는 스스로 생명체임을 주장하며 생명체 고유활동인 죽음과 번식(개별화)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인형사가 선택한 융합(번식활동)의 대상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넷에서 갖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담보로 주인공에게 의식 차원에서의 융합을 요구합니다. 타인의 의식과의 융합을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의 존속에 대한 위협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인공은 인형사에게 자신의 존재가 남는다는 보장이 있냐고 물어봅니다. 인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보장할 순 없지 인간은 계속 변하는 법이고 지금의 너로 남으려는 집착은 너를 계속 제약할 거야"

  이 말을 듣고 주인공은 인형사와의 융합을 결정합니다. 이 후 바트의 집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더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바트가 주인공 의식의 연속성을 질문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릴 때는 말도 어린아이답게 생각도 어린아이답게 이해도 어린아이답게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면 어린 시절을 버리네"

"이젠 '인형사'란 프로그램도 '소령'이란 여자도 없어"

  융합을 통해 혼란을 겪던 주인공은 이제 없습니다. 연속하고 고정된 '나'가 존재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주인공의 고민은 사실 불필요합니다. 주인공의 고민과 비슷하게 우리는 은연중에 연속하는 내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연속하는 것은 나의 기억 외에는 없습니다. 6개월이면 모든 세포는 다른 물질로 교체되고 우리가 얻는 정보나 만나는 사람 그리고 경험에 따라 인간은 변해 갑니다. 20대 초반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딴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초등학교의 나를 생각한다면 그 차이는 더욱 더 극적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고정된 나라는 상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와 같은 부류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평생을 괴롭힐수있습니다. 고정된 세계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나'라는 전제들이 흐려질 때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다른 가치를 스스로에게 설득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사라지고 오락만 남은 게임 <사이버펑크 2077>

  사이버펑크를 장르의 가장 최근 작은 CD PROJEKT(CDPR)의 게임 <사이버펑크 2077>(2020)입니다. 이 작품은 실패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사이버 펑크의 무대 장치들을 빌려온 데다 세부적으로는 1990년에 출시된 <사이버펑크 2020>의 타임라인을 그대로 빌려 왔기 때문에 오리지널 스토리를 사용했을 때의 리스크를 줄였죠. 한 인간에 두 의식이라는 테마와 전뇌 해킹, 넷에서 존재하는 의식 등등... <사이버 펑크 2020>도 이를 의식해서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드러 냅니다.

왼쪽은 <사이버펑크 2020>의 <매트릭스> 오마주

  다소 김이 팍 식어 버리는 건 무대장치를 오로지 그저 빌려왔을 뿐 전혀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이버펑크장르에서 제기되었던 어떤 질문도 문제의식도 없었죠. 소설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다음과 같이 평가 합니다. 

"GTA에다가 흔해 빠진 80년대 복고풍-미래 스킨을 덮어 씌운거 같다."

  최근 작을 보면 사이버 펑크라는 장르는 이제 오랜 기간 소비되어 남은 것이 없는 장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 장르인 오픈월드로서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비슷한 스킬트리, 비슷한 전투방식, 어디서 본듯한 퀘스트 ... 차세대 게임으로 소개는 하지만 사실상 스토리만 바뀐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하드웨어의 발달로 구현되는 그래픽의 발달이 차세대라면 할말이 없지만요. 이는 요즘의 스마트폰과 같습니다. 새로운 제품은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기계를 바꿔야 한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죠. 그래도 스토리는 꽤 흥미 진진합니다. 개성있는 캐릭터들과 밉지만 애정가는 캐릭터들 그 애정이 유발하는 다양한 엔딩의 욕구 까지, 오락으로 즐길 여지는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게임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심각한 버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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