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2022. 2. 4. 13:53Movie

반응형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벌써 세 번째 영화화로 인한 숙제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스파이더맨은 소니(SONY)와 디즈니(Disney) 사이의 판권 문제 때문에 히어로 영화 치고는 굉장히 특이한 패턴으로 성공한 영화다. 일반적인 히어로 물이나 MCU 히어로의 성공적인 데뷔에는 그들의 기원이 되는 영화가 밑바탕이 되기 마련이다. MCU의 인기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와 아이언맨(Iron Man)도 각각의 독립된 영화에서 그리고 나아가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등장해 히어로서의 그 기원과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MCU의 주요 히어로들이 영화에 등장한 것은 70년대가 마지막이거나 영화 매체로서는 최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반해 스파이더 맨의 첫 실사화 영화는 2002년부터 시작해 빠르면 2년 늦으면 5년 간격으로 비교적 최근까지 꾸준히 개봉하였다. 도중에 리부트 되어 팬들이 비슷한 서사를 경험했던 것을 감안하면 스파이더맨의 캐릭터는 전작에 의해 심하게 소모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2002년 개봉작 <스파이더맨>과 2012년 리부트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소니와 디즈니간의 판권 문제가 2015년 해결되면서 MCU에서 스파이더맨의 최초 등장은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Captain America: Civil War)>가 되었다. 스파이더맨은 이미 전작에 의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케빈 파이기(Kevin Feige)는 반복을 피하기 위해 스파이더맨의 기원과 히어로로서의 성장에 관한 여러 과제들을 생략하거나 미루는 방식으로 소모된 서사와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재활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생적 결핍의 문제와 더불어 스파이더맨 홈 커밍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인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Spider-Man: Far From Home)>개봉 시에도 미처 정리되지 않은 판권 문제는 MCU에서 스파이더맨의 정신적 성장이 홈 커밍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까지 유예되는 다소 특수한 결과를 낳았다. 

캡틴 아메리카:시빌워 에서의 첫등장

  물론 양적인 성장은 있었다. 트릴로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인 <스파이더맨: 홈커밍(Spider-Man: Homecoming)>과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에서 그리고 협업 작품인 어벤저스(Avengers)와 캡틴 아메리카 총 5편의 작품에서 등장할 동안 경제적으로는 토니 스타크의 후원에다 최첨단 나노 슈트를 얻었고 <파 프롬 홈>에서는 토니 스타크가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에게 사실상 자신이 가졌던 대부분의 유산을 넘겼다. 세계관 최강자들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인맥, 사적인 영역에서도 여자 친구인 MJ와 절친 Ned Leeds 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행복한(?!)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했듯이 전적으로 양적인 성장에 치우쳐 있다. 고통을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다소 이상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에 다른 영웅들이 겪은 고난과 고뇌에 비하면 MCU에서의 스파이더맨의 이야기는 <노 웨이 홈>이전까지는 선배 히어로가 벌여 놓은 일들로 인한 단순 해프닝 성격이 강하다. 

MCU 스파이더맨은 금수저

 

  <홈커밍>과 <파 프롬 홈>에서의 스파이더맨은 사실상 각각 <어벤저스>와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의 외전에 가까운 지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영화 <홈 커밍>은 치타우리 종족의 침공 이후 남은 외계 물품의 뒤처리로 인해 발생한 사회문제를 배경으로 한다. 스파이더맨은 여기서 독립적인 영웅이라기보다는 아이언 맨의 사이드 킥으로서의 모습으로 활동한다. 비슷하게 두 번째 영화인 <파 프롬 홈>은 아이언 맨의 죽음 이후 그가 남긴 유산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건들을 담은 영화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선배 영화와 아이언맨에게 의존한 결과 스파이더맨의 스펙은 본인이 겪은 고난과 노력에 비해 과하게 높아졌다. 이로써 MCU 나름의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구축되었으나 원작 스파이더맨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와는 멀어졌다. 가난과 고뇌 그리고 슬픔이 함께했던 전작의 스파이더맨에 비하면 MCU의 홈커밍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까지 심지어는 세 번째 작품 대부분에서 '금수저, 행복, 잼민이(철없음)'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아버지

이 모든 숙제를 한 편으로 해결한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

  위와 같이 <노 웨이 홈>은 한 영화가 해걸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숙제들을 한 영화에서 정리해버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서사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다. 위에서 언급한 숙제를 다시금 정리하자면 스파이더맨은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리부트와 속편이 제작되어 캐릭터가 소모되었고 결정적으로 홈커밍 트릴로지 제작 중에도 판권이 정리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노 웨이 홈> 한편에 가중된 하중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MCU에서의 스파이더맨은 <노 웨이 홈>이전까지는 선배 히어로가 벌여 놓은 일들에 대한 뒤처리적 성격이 강한 영화로 선배 히어로에게 지나친 영향을 받고 있었다.
2. 1번의 결과로 전작의 스파이더맨들이 구축한 스파이더맨 캐릭터와 멀어졌다.
3. 트릴로지의 마지막 영화인 <노웨이 홈>까지 스파이더맨의 정신적 성장이 유예되고 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만능 작업대

  이 숙제들은 <어벤져스> 속편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새롭게 제작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다. 홈커밍 트릴로지의 스파이더맨은 불과 <파 프롬 홈>까지만 해도 스파이더맨이 차기 아이언맨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아이언맨이 자신의 영화 3편과 어벤저스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나노슈트를 물려받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이는 만능 작업대의 존재는 차기작의 이야기의 개연성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도 단독 영화 두 편을 거치면서도 히어로의 정체성과 피터 파커라는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모습은 <노 웨이 홈>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노 웨이 홈>을 서사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위의 숙제들을 MCU의 피터 파커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스스로 선택(희생)하면서 대부분 풀어 냈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까지만 해도 피터 파커는 친구의 대학교 진학이라는 사적 욕망을 위해 세계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일을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부탁하는 다소 무책임한 인물로 출발한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서는 세계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사회적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로 변한다. 이 사회적 죽음은 히어로로서의 성장을 상징하며 과거에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던 유산들을 모두 반납하는 '리셋 reset'을 의미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스파이더맨은 선배들에게 독립하여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스토리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전통

  그리고 2차적으로 이번 <노 웨이 홈>은 MCU 스파이더맨의 내적인 숙제와 더불어 전작 스파이더맨들이 남긴 서사적 유산을 영리하게 계승했다. 전작에서 벤 삼촌의 유언인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웅 스파이더맨을 대표하는 문구였다. 하지만 MCU에서는 이와 비슷한 뉘앙스로 "특별한 능력을 가졌는데 그걸 쓰지 않아 나쁜 일이 벌어진다면 나 때문 아닌가?"로 토니 스타크에게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넘어간 것이 전부였다. <노 웨이 홈>에서는 이를 메이 숙모의 죽음과 유언으로 변주한다. 그리고 메이 숙모의 죽음을 사적인 복수로 마무리하려던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1대 스파이더맨인 토비 맥과이어(Tobias Maguire)가 막아 서면서 그의 성장을 도왔다. 이와 같은 장면들을 삽입하면서 전작에서 다소 흥행에 실패했던 이야기가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 MCU에 편입되어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MCU의 스파이더맨은 과거의 유산들을 물려받으면서 MCU만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전작 모든 이야기를 계승해 더 풍성한 서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위의 모든 숙제들을 한 영화에 버무리면서 해결하고 재미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서사는 마치 수학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내가 지금까지 본 히어로 영화중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끝으로 <어벤저스 : 엔드 게임>을 끝으로 마블 뽕이 많이 빠졌는데 <노 웨이 홈>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그 동안 미뤄뒀던 MCU 계열 디즈니 드라마들이 괜찮다면 다시 리뷰로 돌아올지도?

같이 읽으면 좋은 글 
 

욕은 많이 먹었지만 지금 보면 꽤 괜찮은 영화 <캡틴 마블> 리뷰

** 해당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외적으로 굉장히 시끄러웠던 영화 2019년 3월 6일 개봉한 <캡틴 마블(Captain Marvel)>은 전 후에 굉장히 잡음과 소음이 많았던 영화다. 영화 외적의

book-abyss.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