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욕을 먹는 이유를 알고 싶다구요? <캡틴마블>을 보세요.

2022. 2. 11. 01:23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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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민감한 주제인 만큼 미리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풀고 싶다. 나는 페미니즘이나 소수자의 인권을 신장하려는 사상이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상이나 견해를 짜증 나고 불쾌한 방식으로 그리고 촌스럽게 전달하여 문제를 악화시키는 그 방식 자체를 고발하고 싶다는 동기를 미리 밝혀둔다. 여러 창작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미 오래전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캡틴 마블>이 글을 남길 좋은 기회를 내게 주었다.  

캡틴 마블에 담겨 있는 페미니즘

  우선 <캡틴 마블>은 주연 배우인 브리 라슨(Brie Larson)이 밝힌대로 페미니즘을 담고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페미니즘임을 알리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배우들의 대사에 그 메시지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노골적이며 심지어 반복적으로 의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대사들이 등장하는 구도 역시 딸이 어머니에게 지적하는 단 한 건을 제외하면 모두 남성과 여성을 서로 대립구도에 두고 사용되었다.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욘-로그(Yon-Rogg)의 성별 역시 남자로 극 중 내내 주인공인 캐럴 댄버스(Carol Danvers)에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시도한다. 페미니즘을 나타내는 여러 장치(주로 대사)를 제외하고서라도 <캡틴 마블>의 서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남성의 가스 라이팅을 극복하고 자신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여성 주인공이 남성에게 들은 대사
1. "여자는 조종석에 안어울려, 알지?"
2. "포기해 캐럴"
3.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4. "넌 약해"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어머니에게 그 딸이 하는 대사
"역사상 가장 멋진 임무를 포기하고 나랑 소파에 앉아서 TV나 볼 거야? 엄마로서 딸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줘야지"
성차별이 될 수 있는 말을 지적하는 대사
"아니면 내(여성)가 우주선을 만들면 되죠." "(그는) 그런 거 생각 못해."
메인 빌런에게
"난 너에게 증명할 게 없어."

페미니즘을 촌스러운 방법으로 표현한 영화

  이 영화는 감독이 페미니즘을 영화에 반영하는 천박한 방식으로도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먼저 페미니즘이라는 사상 또는 견해를 가장 촌스러운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관객들의 몰입을 깨뜨린다. 90년대 감성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생각해보자. 그 시절 영화들도 미국의 위대함이나 세계 경찰적 면모를 관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최소한 "미국 만세."나 "테러리스트들은 나빠요."라는 식의 대사를 집어넣지 않았다. 그저 영웅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누가 봐도 악당인 사람들이나 외계인들과 싸우는 모습을 모여줄 뿐이다. 물론 이런 단순한 구도도 유치하지만 <캡틴 마블>의 방식은 더 심하다.

  <캡틴 마블>은 여성이 남성을 윽박지르는 뻔한 구도를 바탕에 깔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등장인물들에게 직접적으로 시키는 무성의함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논설문을 들이미는 부자연스러움과 같다. 이는 세련된 방식으로 메시지를 영화에 녹여낼 능력이 없는 감독이 캐릭터를 희생하면서 자신의 의무를 전가한 것이다. 적어도 그런 노골적인 대사가 카타르시스 같은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의 빌드업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여성성에 콤플렉스를 가진 문화창작계의 페미니스트

  이런 촌스러움 보다 더 심각한 부분은 감독이 내세우는 페미니즘이 너무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면서도 전통적인 여성성이나 여성적 성역할을 미워한 나머지 그것을 전통적인 남성성과 남성적 역할을 상대적 우위에 놓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주인공의 친구 마리아 램보(Maria Rambeau)에게 딸 모니카 램보(Monica Rambeau)가 하는 다음의 대사이다.      

  "역사상 가장 멋진 임무를 포기하고 나랑 소파에 앉아서 TV나 볼 거야? 엄마로서 딸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줘야지"

  이런 류의 대사를 하면서 모니카 램보는 여자아이로서 '씩씩한 아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위의 대사의 행간을 다소 단순화한다면 사회적 커리어 전통적 성역할을 서로 대결구도로 놓은 것이다. 이는 마치 사회적 커리어가 우위에 있다는 속내를 은연중에 풍긴다. 한 부분을 보고 침소봉대한 것도 아닌 것이 이 영화에서는 우월한 남성성을 여성이 갖춰야 할 것으로 놓고 여성성이라고 불리는 요소와 역할들이 영화 내내 나오지 않는다. 연애와 사랑 그리고 성적 코드와 관련된 자칫 여성성이 드러날 수 있는 장면은 단 한 씬도 나오지 않으며 주인공이 지양하는 행동이나 직업 역시 사회적 커리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통적 성역할로 알려진 가정에서의 역할은 그에 비해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PC를 담은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통적 여성성이 거세된 캐릭터 캡틴 마블의 이미지와 묘하게 닮았다.

  이는 감독의 페미니즘이 일종의 남성성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에서 출발한다고 의심할 만한 부분이다. 영화는 성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을 영화를 통해 고발하려고 했지만 감독 자신의 피해의식 때문에 성역할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드러낸다. 이는 감정적인 행위는 나쁜 것으로 요구하는 남성 빌런이 여성 주인공에게 강요하는 일종의 가스 라이팅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모순적이다. 영화가 애초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처럼 어떤 행위가 더 낫고 좋은 것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 없는"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 선택에 우열은 없으며 전통적인 역할로 알려졌던 일들을 선택해도 그것은 언제나 정답이다.

그래도 의도는 좋았던 영화

  페미니즘을 정말 촌스럽고 구린 방식으로 담아낸 영화이지만 감독이 가진 사상적 수준을 감안해서 감상한다면 그럭저럭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다른 메시지를 읽었다. 주인공이 가진 슈퍼 파워처럼 우리는 이미 내적으로 필요한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주변의 시선에 옳다고 주장하는 가치와 역할에 맞춰 나를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것은 내 기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초적인 우리 아버지가 남성인 나에게 종용한 리더십과 외향성에 부응하지 못해 가졌던 콤플렉스를 떠올리면서 영화를 음미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혐오와 열등감에 근거하는 사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제발.. 마블만큼은 수준이 되는 사람에게 이런 영화를 맡겼으면 좋겠다. 이번처럼 그럴 역량이 안된다면 차라리 담백하게 정통 히어로 영화의 공식을 따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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