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많이 먹었지만 지금 보면 꽤 괜찮은 영화 <캡틴 마블> 리뷰

2022. 2. 7. 23:18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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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외적으로 굉장히 시끄러웠던 영화

  2019년 3월 6일 개봉한 <캡틴 마블(Captain Marvel)>은 전 후에 굉장히 잡음과 소음이 많았던 영화다. 영화 외적의 문제지만 개봉 전부터 캡틴 마블 배역을 맡은 브리 라슨(Brie Larson)의 인성 논란과 더불어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feminism) 영화라고 언론에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페미니즘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문화 콘텐츠 관련자들이 PC(Political correctness)와 페미니즘을 많은 팬들을 보유한 작품의 후속작에 폭력적으로 적용했던 것이 문제였다. 소비자들은 전작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캐릭터가 갑자기 흑인이나 게이로 설정이 변한다거나 성격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불쾌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마블 첫 번째 여성 히어로 단독 무비라는 상징에 미국 개봉일도 의도한 건지 세계 여성의 날인지라 많은 소비자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봤고 물론 그 의심은 사실이기도 했다. 

스탠 리의 별세 이후 브리 라슨이 올린 추모(광고) 사진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에는 나 역시 좋아했던 대형 프렌차이즈인 2017년작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Star Wars: Episode VIII The Last Jedi)>가 난도질 당하는 걸 지켜봤고 또 국내 정치적으로는 혐오를 퍼뜨리는 사람들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평가가 별로 좋지 않은 <토르> 시리즈도 건너뛴 마당에 굳이 <캡틴 마블>을 찾아볼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개봉 후 3년이 지나서야 <캡틴 마블>을 볼 마음이 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시점에서는 꽤 괜찮게 볼만한 영화였다. 그냥 평범하게 즐길 수 있었는데 외적인 요소들이 개입되어 오히려 영화 그 자체로만 즐기는 것을 방해했으며 그래서 당시 평가의 기준도 가혹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문화창작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고 싶은 독자들은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
 

닐 드럭만은 유저들의 권력을 어떻게 앗아갔는가? <라스트 오브 어스 Part2> [01]

목차 <닐 드럭만은 유저들의 권력을 어떻게 앗아갔는가?> [01] <닐 드럭만이 유저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방법> [02] 어떤 작품이든,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은 독자를 만나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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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여지도 많았던 영화 

  물론 <캡틴 마블>이 히어로 단독 영화로서 훌륭한 영화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평론가들이나 네티즌들의 평가는 합당한 측면이 있다. 이 영화는 일단 히어로 물임에도 캐릭터 구축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주인공에게 고난이나 슬픈 과거 등 적절한 서사가 주어지지 않아 감정이 드러날 일이 거의 없는 평면적인 인물이 되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내내 주목할 정도로 감정이 드러난 부분은 자신이 스크럴 외계 종족에게 가했던 폭력에 대해서 사과하는 부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주인공을 부각할 빌런 역시 부재하다. 캡틴 마블의 능력에 비해 악당들은 보잘것 없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극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주인공인 캐럴 댄버스는 그 강대한 힘을 가질 만큼의 자격이 있는지 전혀 묻지 않는다.

고양이가 더 매력적이었다.

  영화의 기본 서사는 너무 식상하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뒤 적에게 이용당하고 이를 알아차린 주인공이 다시 복수하는 설정은 많은 영화나 게임에서 소비된 이야기다. 이를 말 그대로 가져다 쓴 수준이라 보면서도 내가 예측한 범위에서 벗어난 일이 거의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액션 역시 힘이 제한되고 있는 초반의 액션씬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볼거리가 없는 수준이다. 이는 히어로가 너무나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보인다. 손에서 발사되는 광양자 에너지 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움직임이 직선적이고 둔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럴 수록 연출에 많은 고심이 필요했지만 결과물을 보면 그 정도의 노력과 공을 들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첨언하자면 영화에 주인공이 뛰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위화감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주인공이 뛰는 장면에서 위화감이 '많이' 느껴진다.

<캡틴 마블>에 대한 비판이 일부 부당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 <캡틴마블>을 재밌게 즐겼다. 비평자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지적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 영화가 맞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망작이냐? 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평범하게 즐길만한 오락영화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작 영화 한 편에 설왕설래가 많았던 이유는 영화 자체 문제는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히어로 중 가장 강력하다는 사전 정보가 있었다는 점, 마블 첫 번째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라는 점에 있다. 요컨대 기대가 지나쳤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과한 기대와 더불어 마블 영화를 평가할 때는 다른 영화와는 조금 다른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종종 잊힌다. 마블 영화를 단 한편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 이유는 사실상 모든 영화가 시리즈 물로 기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독 영화라고 하지만 사실 타 히어로 간의 비교적 엄밀한 연결 고리 속에서 제한적인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이유로 마블의 영화는 때로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기도 한다.

  스파이더맨 <홈 커밍> 트릴로지를 떠올려 보자. MCU의 스파이더맨은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첫 등장하여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나올 때까지 토니 스타크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10대 철부지로 남아 있었다.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사실상 선배들이 벌여 놓은 일들이 MCU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주는 역할에 충실한 영화였다. 등장하는 빌런 수준도 생계형 범죄자 수준인 벌쳐와 미스테리오였다. 스파이더맨은 협업 영화를 포함한 5편의 영화를 거친 다음에야 완성형 히어로서의 서사와 캐릭터가 형성된 것이다. 오히려 그런 시간과 빌드업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더욱더 MCU의 피터 파커에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홈커밍 트릴로지는 사실상 어벤저스의 외전이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캡틴 마블>이라는 영화 한편에서 히어로로서의 캐릭터 구축을 달성하거나 매력적인 빌런을 등장시키는 것은 오히려 서사를 과하게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캡틴 마블도 스파이더맨처럼 시리즈 중간에 등장한 후배 히어로다. 불과 한 달 후에 개봉할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전에 캡틴 마블을 완성형 캐릭터로 만드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선배들의 은퇴식이자 마지막이 될 영화에서 MCU에서 겨우 한 편의 이야기를 점유한 캡틴 마블이 주목받는 것은 부적절 했다. 이는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서 캡틴 마블이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녀가 가진 힘에 비해 <엔드게임>에서 부여된 역할과 시간은 매우 적었다. 이는 비중이 낮고 대우가 좋지 않은 호크아이 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감상한 <캡틴 마블>은 나에게 썩 괜찮은 영화였다. 지금의 나는 애초에 캡틴 마블이 아직까지 MCU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히어로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녀가 매력적인지 아닌지 그리고 강대한 힘에 걸맞은 인물인지는 별로 나에게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자신에 놀랄 정도였다. 더 중요했던 점은 이 영화가 차기에 나올 마블 영화들을 잘 이해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가이다. 최근 다른 마블 영화나 마지막 쿠키 영상을 보면 스크럴 종족이 낮은 비중으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장면들이 뜬금없지 않으려면 캡틴 마블을 시청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21년에 방송한 드라마 <완다 비전(WandaVision)>은 <캡틴 마블>의 이야기가 더욱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번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을 보고 마블 영화 제작진을 매우 신뢰하게 되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빌드업하여 캡틴 마블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할 것이다.

글의 서두에 패미니즘을 언급하였지만 아직 다루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 다루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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