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어벤저> 한편 보다 못한 6부작 캡틴 아메리카 이야기 <팔콘과 윈터솔져>

2022. 2. 14. 04:54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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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마블의 그저 그런 작품 중 하나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영화를 리뷰하면서 느끼는 점은 한편 한편이 거대한 시리즈 물의 일부인 탓에 기존 단독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리뷰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마블은 수많은 그저 그런 영화들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빌드업을 한 뒤 감동적인 영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단일 작품이 다소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불만을 낼 마음이 사라진다. 설사 그렇더라도 저점이 매우 높은 편이라 킬링 타임용으로는 손색이 없다. 이 글에서 다룰 <팔콘과 윈터 솔저(The Falcon and The Winter Soldier, 2021 6부작)>는 드라마로 언급한 그저 그런 작품에 속한다. MCU에서 맡은 역할은 스파이더맨 홈커밍 트릴로지의 1, 2편과 흡사하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이 각각 <어벤저스>와 <어벤저스 : 엔드게임>의 여파로 일어난 일의 뒤처리적 성격을 갖듯이 <팔콘과 윈터 솔저>도 <어벤저스 : 엔드게임>으로 인한 캡틴의 은퇴와 블립의 뒤처리적 성격을 갖는다. 

  <팔콘과 윈터솔저>는 MCU에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비슷한 포지션에 위치한 작품인 만큼 <어벤저스 : 엔드게임> 이후 블립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충실히 다루고 있다. 타노스 핑거스냅으로 지구 인구의 절반이 사라지고 난 뒤 국가들은 인구 부족으로 외지인을 마구 받아들였다. 아이언맨의 희생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다시 소생시켰지만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각국의 정부는 과거 사라진 사람들의 자리를 채웠던 사람들이 불필요해졌고 재산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수많은 난민이 생겼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이러한 사회 변화에 저항하는 테러리스트와 대결하여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엔드 게임> 이후의 사회상을 현실에서도 있을법하게 다뤄 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다음 시리즈를 위한 소기의 역할을 다한다. 

왜 밋밋한 작품이 되었을까?

  위의 장점을 제외하면 <팔콘과 윈터솔저>는 못 볼 정도는 아니지만 나사 빠진 부분이 많은 드라마이다. 전체적으로 1화를 제외하면 밋밋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애매한 작품인 만큼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새롭게 남는 것은 U.S. Agent라는 인물이 탄생했다는 것 외에는 없다. 팔콘은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서 방패를 물려받아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고 윈터 솔저는 이제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이자 친구서의 포지션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드라마를 보지 않고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라 <엔드게임> 이후의 MCU의 세계관을 설명한 것을 제외하면 존재 의미가 희박한 작품이 되었다. 

  이 드라마가 나사빠진 핵심적인 원인은 성의 없이 만든 빌런 때문이다.  핵심 빌런인 칼리 모건소(Karli Morgenthau)는 엇나간 청소년의 이미지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대단한 지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타노스처럼 내적인 논리를 가진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강화 인간이라는 점과 극단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것을 제외하면 범죄 청소년 수준으로 그려진다. 문제는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은 주인공과 대립하면서 주인공을 부각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잡범이 메인 빌런이라면 주인공은 비행 청소년을 잡는 경찰관 이상으로 묘사되기 어렵다. 극의 긴장감도 전체적으로 떨어진다. 그나마 긴장감을 높이는 인물로 등장한 존 워커(John Walker)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대놓고 그냥 나쁜 사람으로 묘사되어 방패를 팔콘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등장한 이상한 인물로 소비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드라마가 모두 끝난 뒤의 new 캡틴 아메리카는 잡범과 나쁜 사람을 혼내준 영웅? 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주인공 보다 주목받은 캐릭터

여전히 무리한 PC 끼워넣기

  미국사회에서는 흑인이 캡틴 아메리카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일일 것이다. <팔콘과 윈터 솔저>에서도 디즈니 답게 페미니즘을 담았던 <캡틴 마블>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PC(political correctness)한 장면이 삽입되었다. 그 방식이 여전히 촌스럽긴 하지만 <캡틴 마블>보다는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변했다. 적어도 이 드라마는 <캡틴 마블>처럼 '페미니즘만을 위한 대사'를 삽입해 영화의 흐름을 끊지 않았다. 팔콘과 윈터솔저에서는 PC 대사를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친구(윈터솔저)와 말다툼하는 주인공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 씬은 세계 뉴스에서도 자주 접하는 내용 그대로였다. 그리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문제의식은 미군의 전쟁 영웅을 등장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여냈다.

  안타까운점은 여전히 창작자들이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제1 가치로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상 선전을 위해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희생하고 있다. 사실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아도 <팔콘과 윈터 솔저>는 존재 자체가 PC 하다. 흑인이 전통적인 백인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된다는 것 그 타이틀을 가지고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PC 한 것이다.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작품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영화 그것도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에 자신의 에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솔저>는 흑인이 캡틴 아메리카가 된다는 사실을 과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PC를 욱여넣었다.

  위와 같은 마블식 PC의 문제는 아이제아 브래들리(Isaiah Bradley)라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에서 드러난다. 일단 전체 이야기에서 이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 삭제해도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핵심 스토리 흐름과 어떤 영향도 관계도 없는 사이드 스토리의 존재가 드라마에 좋은 영향을 줄리가 없다. 극을 늘어지게 만들고 시청자는 불필요하게 아이제아가 표출하는 백인과 국가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공유해야 한다. 이런 인물이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고결해야 할 캡틴 아메리카가 자신의 입으로 인종 차별에 분노를 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샘은 자신의 입으로는 밝히지 않지만 흑인으로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드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뉘앙스를 윈터 솔저에게 남긴다. 작가는 그 거부감을 사실상 아이제아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리 표출하는 다소 비겁한 방식을 사용했다. 

"스티브가 당신을 감옥에 넣은 건 아니잖아요."
- 팔콘과 윈터 솔저 중 Sam Wilson의 대사-

  아이제아가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낼 때 주인공인 샘은 위와 같이 대답한다.  사실 1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자유와 평등의 상징과 같다. 인종 차별이 난무했던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인물이 닉 퓨리라는 흑인을 상관으로 샘과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그냥 그 모습 자체로도 평등을 상징한다. 팔콘은 위의 대사처럼 아이제아 브래들리에게 무차별적 분노를 내려놓으라고 조언하면서도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방패를 받아들이는 것이 인종적 원한으로 어렵다는 식의 대응을 한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를 안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며 샘 윌슨이 스티브 로저스의 방패가 상징하는 가치를 곡해하고 있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샘은 아이제아에 대한 자신의 발언과도 배치되는 모순적 행동을 한 것이 된다.

흑인이 상관이 된 것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다.

  이런 모순을 견디면서도 이 작품은 샘 윌슨이 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대신시키기 위해서 아이제아의 입과 국가에 배신당했던 서사를 빌려왔다. 상징적으로 아이제아는 샘 윌슨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샘이 국가에 의해 잊힌 아이제아를 복권시키는 것은 캡틴아메리카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차별 받았던 흑인인 자신을 복권 시키는 것이다.

  PC를 위해서 전체 이야기에서 불필요한 이야기까지 무리해가며 끼워 넣을 노력으로 2대 캡틴 아메리카의 개인적 서사나 더 채워 넣고 더 매력적인 빌런을 넣어 주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 아메리카와 비교해보자. <퍼스트 어벤저>는 영화 한 편에 드라마 6부작이 해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낸다. 그래서 '흑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이 더 PC 한 것이 될 터다. PC를 담으면서 흑인 캡틴 아메리카는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PC를 작품에 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구리게 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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