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책과 좋은 책은 어떻게 구분할까? <부의 인문학>

2021. 1. 5. 21:08Book

반응형

 

부에 관한 책은 차라리 솔직/담백하게 쓰인 다음 책이 더 나았다.
부자 만드는 4000억 자산가의 조언 - 돈의 속성, 김승호

어떤 독서는 해롭다.

  어떤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거나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그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독수리 타법으로 평범함을 흉내낼 수 있겠지만 속기사가 되려면 정상적인 파지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독수리 타법이 정상이 아님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그 동안의 시간이 낭비 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삶의 곳곳에 있지만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독서의 경험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독수리 타법과 마찬가지로 내 20대 초반의 독서는 낭비의 경험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떤 질문도 없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는 책은 별 관심이 없어도 꾸역 꾸역, 욕심은 많아서 모두 구입해서 읽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반이상이 기억도 나지 않고 기억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삶에 역기능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 나쁜 책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독서의 긍정적 측면에  몰두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잘못된 독서는 삶에 매우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가장 눈에 띄는 비용은 돈낭비와 시간낭비지만 진짜 문제는 충분히 검증되지 사실이나 신념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적절하지 않은 신념을 강화하는 것이다.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말싸움에 이기는 경우는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증거들 자체가 별로 타당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그 증거들을 사용해 나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에 충분한 논증과정이 결여 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독서가 아니라 어떤 주장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논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상당 부분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원에서 나의 20대가 끝나갈 무렵이었으며 대학원이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다. 어느 순간 부터는 시중에 나온 책들 대부분이 거장의 이야기를 베낀 수준이라면 다행이고 그들을 오독하여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책들이 상당수 보이기 시작했는데 오늘 소개할 책 <부의 인문학>이 그 대표격이다.       

책이 내뿜는 유해 물질 분석

  이 책 <부의 인문학>은 내가 생각하는 나쁜 책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독자가 잘못을 저지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본인이 부동산 투자를 이용해 돈을 번 사람이고 지금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때문에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오히려 이해당사자에 가깝다. 그 의심을 확신으로 만드는 것은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매우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먼저 정의가 필요한 단어, 개념을 마음대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논문 하나로 불충분할지도 모르는 주장을 짧은 글 꼭지 내에서도 여러차례 쏟아낸다. 마지막으로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 유명인들의 주장을 다른 주장에서 자기 편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서도 주장만 남고 오히려 유명인의 말은 껍데기만 남게된다. 물론 나는 이 사람의 책을 다 읽지 않았고 앞부분만 읽어도 이 책을 판단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그 의도를 첫번째 장의 첫번째 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 글 [왜 진보 정권이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까?]에서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인용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서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보정권을 뽑지만 그런 정당을 집권세력으로 만들면 결과적으로 자산 가치가 상승해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더 많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니 서민들은 스스로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빠진 요소들이 너무 많다.

  (1) 재정 정책은 그 범위가 넓어서 단순히 복지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재정정책 중에서도 복지만 저격한다. 오히려 재정정책은 오히려 보수 정권이 더 큰 규모로 운용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중대한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단어하나 사용하지 않고 확정된 사실처럼 주장한다.

  (2) 보다 정확히 말하면 부동산 가격은 진보정권 보수 정권 가릴것 없이 상승해 왔다. 진보 정권이 더 올랐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면 그래프를 인용했어야 하며 설사 그런 자료를 가져 온다고 하더라도 호가 중심의 가격 책정으로 부동산 가격지수가 개발된 것은 그리 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신뢰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3) 베네수엘라가 망한 이유를 정부 지출로 무상 복지를 약속한 좌파 정권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명확한 증거는 없다.

  (4) 부동산 상승 요인은 다양하다. 재정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원인이라는 말은 지극히 일부분의 요소만 가져온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통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은 2% 내외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재정정책이 부동산의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요소로 생각하는지 적절한 증명과정은 없다. 설득력을 가지고 싶으면 LTV, DTI 비율이나 계속된 글로벌 경제 침체로 인한 중앙은행은 낮은 이자율, 양적 완화 그리고 투기세력의 다주택 보유에 대한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이다. 

  이것 들은 무려 첫 번째 장 첫번째 글 하나에서 나온 오류들이다. 참고로 이 글은 5페이지에 불과하다. 이후의 글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유명인들의 주장을 아무 곳에서나 끌어와 인용해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을 강화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가장 가증 스러운 부분은 이후의 글에서 온갖 이유를 들어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와 부동산의 불패성을 설파하며 좌파(?) 정권을 공격하지만 저자의 첫 번째 글은 오히려 진보 정권을 찍으면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른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으로 인정받는 책이나 논문은 한 가지의 감정이나 한가지의 주장을 독자에게 설득 하는데 지면 모두를 소모하다시피 한다. 그만큼 어떤 문제를 논증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어러움은 대학원에서 논문을 써본 경험이 있다면 잘 이해하게 되는데 사실상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어떤 주장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게 증명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그런 글 쓰기가 말도안되게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과정에 가깝다. 그런 측면에서 책 <부의 인문학>은 가소롭다. 인문학으로 부자가 된다며 경제학자를 끌어오는 것은 사실 조금 이상한 일이기도 한데 그는 경제학을 했던 사람 중에서 진짜 부자가 된 사람이 케인즈와 리카도 둘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이 책은 통째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덩어리다. 그저 유명한 사람의 주장 한 줄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의견과 버무려 5페이지로 늘렸다. 사실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책은 크든 작든 이런 권위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버무려 재구성, 재편집되어 나올 뿐인데 이 책은 저자의 마음대로 그리고 성의 없는 방식으로 그것을 빌려왔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실패의 교훈을 얻기 위한 용도로만 적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을 읽고나면 그의 복제거나 주석본에 불과한 수 많은 책들을 볼 때 더 이상 수용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과 비교할 수 있는 평가자의 위치로 가게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종의 주석서가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고전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나 고전의 해석이 어려울 때에 한정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책이 판매량에서 순위권에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