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삶이 유발하는 부조리에 저항하는가? <시지프 신화> [01]

2020. 12. 9. 11:23Book

반응형

**아래 포스팅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저서, 쉽게 읽기

들어가면서 책 읽기는 이름 없는 낯선 곳에서 자신만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한국에 있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익숙한 이정표들을 이용할수 있고 그래서 손쉽게

book-abyss.tistory.com


부조리의 추론

01 부조리와 자살

  카뮈가 살았던 무렵 형이상학과 함께 기독교적 세계관은 상당부분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인간의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입니다. 세상의 의미를 찾기 위한 즉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사상가들은 실패했고 그 끝에서 부조리만을 발견하였습니다. 카뮈의 작업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부조리를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카뮈가 보기에 가장 긴급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육체의 명령은 정신이 내리는 판단에 앞서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 대신 '희망'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이 수많은 고통만이 있는 인간의 삶은 과연 참고 견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비하면 우주가 11차원인지 이성의 범주가 몇 개인지는 그야말로 하찮은 문제인 것입니다.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2016, p. 23)

희망 vs 자살, 정답은?

02 부조리의 벽

  카뮈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 부조리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했지만 아직 부조리가 무엇인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요청을 <부조리의 벽>에서 그 개념을 일상적, 지성적 차원으로 다루어 해소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상적 차원에서 부조리의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을 여러 예시를 들어 설명합니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미래를 기대한다는 것, 자연이 한순간 우리에게 얼마나 낯설고 "고집스럽게 우리를 부정할 수 있는가를 알아"차릴 때, 거울 속에서 비치는 나를 낯설게 느낄 때 이 모두가 부조리를 경험하는 순간이라고 카뮈는 말합니다. 한편 지성적 차원에서의 부조리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나 과학을 동원하더라도 결국 한 편의 시(詩)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카뮈가 보기에 세계를 남김없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나 심지어 나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모두 거대한 부조리의 벽에 막혀버립니다. 그는 부조리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여 설명합니다.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의 대면에서 생겨난다. 
(2016, p. 49)

  세계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조리의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면 인간은 무의미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카뮈는 이러한 혼란을 '사막'으로 표현하는데 일찍이 이 사막에 도착한 선배들은 카뮈가 보기에 그 무의미를 견디지 못하고 일종의 철학적 자살(희망)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03 철학적 자살

  지금까지는 부조리의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을 다루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부조리를 다루었지만 아직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은 아닙니다. 부조리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화가 필요하고 그래서 카뮈는 부조리 상황에 대한 몇 가지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부조리 발생을 다음 아래와 같이 도식화합니다. 이렇게 정형화된 형식에서 부조리는 결코 인간에게도 속하지 않고 세계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직 두 항 사이에만 있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삼위일체에서 어느 한 가지 항을 파괴하면 그것은 그 항뿐만이 아니라 구조 전체를 파괴하게 됩니다.

부조리는  서로 비교되는 두 요소의 대비에서 생겨난다. 
(2016, p. 52)

  처음부터 말했듯이 이제 이 개념화된 부조리가 카뮈의 작업에서의 출발점이 됩니다. 최초의 질문인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역시 부조리의 삼위일체라는 도식 하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간과 부조리 그리고 세계 중 어느 항을 제거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해답을 낸다면 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부조리를 회피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뮈가 보기에 실존 철학자들은 연구의 끝에서 부조리를 발견한 뒤에 삼위일체 중 하나의 항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부조리 문제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이들의 문제 회피적 행위를 일종의 "철학적 자살"로 표현하였습니다.

04 부조리의 자유

  카뮈는 이제 부조리에 대한 지금까지 소개한 부조리에 대한 개념을 토대로 하여 다음 세 가지의 귀결을 이끌어 냅니다.

(1) 나의 반항, (2) 나의 자유, (3) 나의 열정 

  (1)의 귀결은 세계와 인간의 대립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부조리)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 삼위일체를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기인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카뮈에 최초에 질문한 부조리에 대답으로서의 '자살'은 이제 논외의 것이 됩니다. (2)의 귀결은 부조리를 생생하게 받아들여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들과 미래에 대한 계획에서 벗어 나는 진정한 자유입니다. (1)과 (2)를 통해 (3)의 귀결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것은 부조리를 인정한 인간이 미래의 통제 불가능성을 알고 현재만 빈틈없이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때 모든 경험이 부조리 하에서 무차별하기 때문에 부조리를 지탱하는 한 경험의 양(量)만이 중요해집니다. 

 이런 귀결을 통해 최초의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습니다. 

"부조리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한 내 삶에서는 희망자살도 없다. 오로지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죽음이 오지 않는 한 유지할 뿐이다." 


2. 부조리한 인간에서 이어집니다. 

목차
1. 부조리의 추론 ◀

2. 부조리한 인간
3. 부조리한 창조
4. 시지프 신화
참고자료
Camus, A.(1942). 시지프 신화(김화영 역). 서울: 민음사(2016) 
반응형